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영국은 몇주 전, 영국 총리가 공식적으로 감염 관리 포기를 선언하고 국민들에게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의 발표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와 맞물려서 마트에 휴지와 생필품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며칠 뒤에는 냉동식품, 파스타 등 오래 저장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들이 사라졌고,
그리고 또 며칠 뒤에는 일반 신선식품들 마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생필품이 사라질 때는 사실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뉴스로 어렴풋하게 일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휴지를 사재기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같은 섬나라끼리 통하는게 있나보다 했고
(그래도 영국은 적어도 화강암은 사진 않고 있네요)
제가 사려는 품목들은 적어도 충분히 살 수 있었거든요.
저도 참 근시안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나봅니다.
다만 항상 가득차있던 마트 한켠에 텅 빈 선반이 있다는 것에 막연한 불안감 같은 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영국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이 들지 않았나 싶네요.
그래서 처음엔 휴지를, 그 다음엔 파스타를, 그 다음엔 신선식품을..
필요한 것들을 순차적으로 사재기하기 시작했나봅니다.
저는 그래도 영국에서 지내면서 건강식으로 먹겠답시고 신선식품 위주로 구매해서 요리했었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아직 살게 충분했습니다.
그게 3월 첫째 주의 얘기였습니다.
그러다 3월 둘째 주로 접어들자 슬슬 사람들 사이에 본격적으로 불안감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마트 안에 마스크를 쓴 서양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마스크를 쓴 동양인만 봐도 바이러스라며 폭행을 하던 나라였는데,
정작 자신들도 마스크를 쓴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조소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쌀, 파스타, 냉동식품 등 저장해놓고 먹을 수 있는 식품들이 모조리 매진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마트 매대의 1/3이 사라졌습니다.
시각적 효과는 굉장했습니다.
문득 학창시절 교수님이 말씀하신 Visual Dominance 라는 단어가 생각나네요.
저도 얼른 남아있던 펜네 파스타를 샀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파스타 요리는 스파게티로만 해오던 제가 펜네만 남아있다고 펜네를 사다니요.
식료품 말고 생활용품 마트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부 품목의 경우 인당 2개 이상 살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그렇게 된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다시 마트를 갔더니
이제는 야채, 고기, 우유, 계란 등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들 역시 사라졌습니다.
마트에 남아있는 건 군것질 거리나 치즈, 소스 등 그 자체로 식사가 될 수 없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물도 반 이상 비어있었습니다.
더이상 마트에 뭘 사러 올 이유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고간 장바구니가 무색할 만큼 거의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겨우 어떻게 브리타 정수기 필터 하나 사왔네요.
정말 눈 앞에 공포가 닥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진짜 당장 먹을 게 없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행히 집 옆에 한인마트에는 라면이 좀 남아있어서 비상식량 개념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나서는 귀국을 결정하게 되어 결국 모든 걸 버리고 한국에 왔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아시안 마켓이 아직 먹을 걸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조그마한 아시안 슈퍼마켓에 영국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줄 서서 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몇 번 이용하면서도 백인, 흑인은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참 신기하면서도 씁쓸한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영국 간호사가 사재기를 멈춰달라는 호소가 담긴 뉴스 기사를 봤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재기를 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겨우 두달 머물면서 별로 그들의 생각을 마주할 기회도 없었어서 다분히 한국사람 입장에서의 생각이긴 한데,
저는 각자 알아서 조심하라고 했던 정부의 대응이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다 한 명이 사기 시작하면 죄수의 딜레마가 떠오르는 상황이 되면서 군중심리로 너도나도 살 수밖에 없고,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도 락다운 하면서 외출 자체를 막아버리니
사놓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쟁여두자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세계에서 주목하고 칭찬할 정도로 강력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택배 배송 등 유통 쪽에서 열심히 일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기 때문에
물건을 구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들지 않기 때문에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겠지요.
마스크의 경우에는 못 구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사재기가 일어났던 것을 보면
시민의식의 문제 까지는 아닌 것 같긴 합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선진국으로 생각했던 유럽 사람들이 사재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슈도 많이 되고,
사재기가 없는 한국 사례가 외국에 소개되기도 하는 걸 보면
정부의 대처나 사회 시스템이 국민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다시 세계적으로 그 나라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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